大禹治水 傳說 

 

 大禹治水의 전설은 매우 광범위하고, 그 사적(事迹)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梅색本《尙書·益稷》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禹의 아내는 도산씨(塗山氏)의 여자로서 결혼후 계(啓)를 낳았다. "啓가 응애응애 울어도" 禹는 그를 돌봐 줄 여유도 없이 治水를 위하여 외출하곤 했다. 《史記·夏本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禹는 부친 곤(噓, 우왕의 아버지)이 공을 세우지 못해 죽음을 당한 것에 상심하여 자기의 가족을 돌보지도 않은 채 집에 들어오지 않고 13년을 몸을 바쳐 治水하였다." 《韓非子·五履》에는 "禹는 천하의 왕이나 治水중에는 친히 연장을 들고 백성들 보다 먼저 노동했으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범을 보여 허벅지의 솜털마저 닳아 없어졌다." 전설에 의하면 禹는 많은 군중을 거느리고 홍수를 평정하여 다스린 후에는 토지를 개간하고 농업생산을 발전시켰다. 이상의 기록에서 대체적으로 홍수를 다스리는 大禹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천백년후까지도 大禹가 줄곧 중국인의 존경을 받고 자기 민족의 자랑으로 여겨 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전설은 상상을 빌어 大禹를 治水의 영웅으로 만들었는 바, 이는 당시 인간들이 자연을 정복하려는 이상과 희망을 반영한다. 大禹治水의 전설은 넓은 지역으로 퍼져 점점 신화로 변해 갔고, 큰 강줄기를 따라 거의 모든 지역에 大禹의 "탁월한 공로"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이수(伊水)가 흘러가는 이궐(伊厥, 지금의 洛陽남쪽)은 禹가 신의 도끼를 사용하여 갈라놓았다고들 말한다. 山西省과 陜西省사이의 龍門과 하난산록(賀蘭山麓)의 청동협(靑銅峽)도 禹가 판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 외에 禹가 강의 源流를 시찰할 때 한 지방에 이르러 한 무더기의 돌을 쌓아 표지로 삼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적석산(積石山)이다. 유명한 삼문지주석(三門砥柱石)과 三門 - 神門·人門·鬼門 - 은 신화중에 大禹가 파낸 것이라고들 말하고, 심지어는 鬼門섬위의 두 개의 둥그런 구덩이도 大禹가 사자머리에서 말을 타고 三門을 지날 때 말이 실수하여 남긴 앞발굽의 흔적이라고들 한다. 역대 시인들은 여기에서 大禹가 이룩한 治水의 위대한 공적을 음미하는 많은 시를 썼다.

**출처 : 黃河水利史述要, 水利部黃河水利委員會,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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